(펌)의대정원을 찬성하는 핵심이유

2024. 2. 8. 21:55시사 트래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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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을 하기에 앞서, 의사들이 잊고 있을, 아니면 애써 잊은 척 하고 있는 FACT를 먼저 지적하겠다.

지금 의료 현장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을 50살 전후의 의사들이 대학에 들어간 1990년도 전후의 대학입시에서 의대는 결코 최상위권이 아니었다.

아래에서 인용한, 인터넷에서 아주 쉽게 입수할 수 있는 1990년도 대성학원 배치표를 봐도 최상위권에 서울대 물리과가 있고 그 다음에 서울대 공대의 상위 과와 나란히 서울대 의예과가 있었다.

그 밑으로 서울대 공대 중위권 과와 자연과학대 인기 과가 있고, 다시 그 밑에 서울대 공대 나머지 과와 나란히 연세대 의예과가 배치되어 있었다.

요컨대 대한민국의 우수한 학생들은 의대를 간 것이 아니라 대부분 공대와 자연과학대를 갔다. 그렇기 때문에, 심지어는 지방국립대 공대보다 낮은 점수를 받은 학생도 의대를 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의대에 들어간 학생이 지금  의료 현장에서 의료계의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명백한 FACT를 전제로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논거 중 극히 선동적인 두 가지 주장에 대한 나의 반론을 전개하겠다.

1. 의대 정원을 늘리면 질 낮은 의사가 양성된다?
=>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물론, 의대 정원을 늘리면 당연히 입결이 내려갈 것이고, 이전보다 입학성적이 낮은 학생들이 의사가 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지방국립대 공대보다 낮은 점수를 받은 학생도 의대에 들어갔고, 그렇게 들어간 분들이 특별히 의료 현장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그 반대의 예는 얼마든지 들 수 있다. 이국종 교수님도 한양대 전자공학과보다 배치표 상 두 단계 낮은 아주대 의대를 나왔지만 나를 포함하여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실력으로나 인품으로나 존경해 마지않는 최고의 의사이지 않으신가?

요컨대, 수능 점수를 좌우할 수학 실력이 조금 부족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의대에서 적절한 교육을 받으면 충분히 의사로서의 구실을 할 수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의대 정원 확대 => 의대 입결 하락 => 의사의 질 하락" 이라는 선동적이고, 자기기만적이며, 심지어는 선민의식에 찌들어 있는 것 같기까지 한 주장에 대하여는 반론을 제기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단, 교육 여건의 악화 부분에 대해서는 일리 있는 주장이지만 이 역시 극히 표피적인 주장이라서 나는 찬성하지 않는다. 다만 이 부분은 반박에 더 복잡한 논거가 필요하다보니, 여기서는 공간이 부족해서 따로 반박하지 않겠다)

2. 의대 정원을 늘리면 이과의 우수 인력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것이다?
=> 극히 근시안적인 주장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라. 성적이 잘 나오는 고3 학생 중 의대를 지망하는 학생이 무슨 숭고한 이상이 있어서 의대를 지원하는 것일까?  최근에 의사들의 수입이 높고 그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높다고 하니까 분위기에 휩쓸려 의대를 선호하는 것이 진실이다. 근거가 뭐냐고? 간단하다. 그렇게 숭고한 이상으로 학생들이 의대를 지망했다면, 전공을 선택할 때 목숨과는 별로 관계 없는 미용 전공에 목숨을 걸고 생명을 살리는 진짜 의사다운 전공은 기피하는 현실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이 그러하다면, 의사 인력의 증원으로 의사의 수입과 사회적 지위가 (얼마 만큼일지는 모르나) 내려갈 것으로 예상된다면 오히려 우수한 인력은 공대나 자연과학대로 발길을 돌릴 가능성이 더 높아질 것이다. 역설적으로 의사의 수입과 사회적 지위가 현재보다 내려가야만 비로소 (상대적으로)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고민을 한 학생들이 의대의 문을 두드리게 될 것이다.

요컨대, 의대가 이공계 우수인력을 빨아들인다는 주장은 "의사는 원래 모든 학생의 선망의 대상"이라는 시대적 우연(대표적으로는 외환 위기 등 몇 번의 경제위기)이 빚은 결과에 대한 과잉 해석에 선민의식이 덧붙여진 주장이라서 반론을 제기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맺음말

나는 의사 증원이 의료 현실을 개선할 수 있을지에 대하여는 결론을 내리지 않겠다. 모든 제도 개혁에는 순기능적인 측면과 역기능적인 측면이 있을 것이고 이 두 가지를 균형있게 판단할 정보도, 시간도 내게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증원을 반대하는 근거 중 극히 선동적인 두 가지 주장에 대해서는 너무도 쉽게 반박이 가능하다고 본다.

덧붙여, 지금 대한민국을 떠받들고 있는 수 많은 기둥 중 가장 굵고 선명한 두 기둥,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국제경쟁력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를 생각해 보기 바란다. 이 두 기업의 현재 모습을 만든 사람은 이건희도, 정몽구도 아니다. 바로, 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에 대학에 들어간 우수한 이공계 인력들이다.

이걸 생각하면, 지금의 의대 인기는 두렵기까지 하다. 의사는 물론 훌륭한 직업이고, 존경스러운 직업이다. 하지만 30년 뒤에 의사들에게 이 나라를 먹여살리는 기둥 역할 까지는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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