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식당 아들래미가 보는 예산 국밥골목

2023. 4. 4. 12:36시사 트래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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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겪어봐야 아는게 있다


뭐 대충 유튜브 채널이나 뉴스를 통해 많이들 보셨을텐데,
솔루션을 제시하는 백종원씨에게 불만을 토로하는 점주들 모습에 많이 빡치셨을 거 같습니다.
위생상태부터 시작해서 장사방법까지 훨씬 더 잘 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함에도 불구하고 거부하는...

근데, 개인적으로 저는 식당집 아들래미라서 근 30년동안 부모님이 식당 운영하시는 걸 보며 자랐는데,
다수 분들과 동일하게 한숨이 나오면서도 한편으로는 또 저 식당 주인들 심정도 이해는 가드라구요.(동의가 아니라 이해...)

식당은...힘듭니다. 육체적으로 힘들어요.
맛이 있건 없건 장사가 잘되건 안되건 그 식당이 유지가 되고 있다면 기본적으로 힘든 일이라고 봐야 합니다.
힘이 안들면 그 식당은 애저녁에 사라지고 없죠.
거기서 소위 대박이 터지는 식당은, 솔직히 부모님도 그런 시절이 있었고,
주변에 같이 요식업 하시는 분들 중에서도 소위 대박을 치는 분들이 몇 분 계시지만, 가히 초월적인 노동강도를 요구합니다.
데일리로 새벽 기상, 11~12시 취침이에요. 하루에 5시간을 채 못 자는 경우도 많구요. 그게 365일 중에서 340일 정도가 지속되죠.

백종원씨가 제시하는 솔루션,
제가 볼 때에는 대부분 그걸 요구하는 솔루션입니다. 합당한 솔루션이에요.
요식업은 대부분 한계를 초월하는 노력이 투입되고, 거기에 마케팅이 조금 가미되면 성과가 나오는 분야입니다.

근데, 식당집 아들래미가 보는 관점에서 저 솔루션은,
계속 식당을 관성으로 유지해오던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저 귀찮은 일일 수도 있어요.
수십년 장사한 사람들은 그 솔루션, 상당수 이미 알고 있어요.
근데 사람은 항상 인풋 대비 아웃풋을 생각해요. 그 양반들은 이 식당으로 대박을 낼 욕망 자체가 없어요.
이 식당으로 대박이 나서 어디 빌딩도 사고...그런 욕망 자체가 없어요.
이걸 한심하다고 할지 소박하다고 할지는 각자가 알아서 판단할 문제지만,
저희 어머니를 포함한 식당 주인들은 알거든요. 저 솔루션대로 하면 장사는 흥해요.

근데, 주인이 죽어납니다.
그냥 평범하게 월 매출 천만원 정도 찍어서 300정도 남겨먹는 식당도 골병이 드는데,
월 매출이 억이 되고 3000이 남는 식당이 된다? 죽어납니다. 그게 두려운 거에요.
네, 그게 부자되는 길이긴 할겁니다. 근데 그 선택을 안하고 못하는 거에요.

그리고 그 와중에 일부 주인들은
'도대체 우리가 이 시골에서 소소하게 장사해서 애들 다 키우고 조용하게 살고 있는데 왜 유명인이 쳐들어와서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지시하면서 그걸 안 따르면 무슨 대역죄인이 되는 것처럼 만들고, 지역 경제를 살려야 하느니 마니...그냥 동네 식당에서 조용히 손님 받으면서 소소하게 살고 싶은 사람들이 왜 지역 경제까지 생각하고 고민해야 하느냐?'
이런 양반들도 나오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식당들 중 상당수는 건물이 자기 건물이 아니에요.
대박이 나면 대부분의 식당들은 임대 계약 연장이 어렵습니다.건물주가 무슨 수를 써서든 내보내려고 해요.
국밥골목도 더본이 건물들을 다 인수했는지 안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인수를 했다면 저기서 월세 대충 한달에 얼마 내고 소소하게 장사했던 사람들 중 일부는 골병드는 솔루션에 따를래, 아니면 나갈래?의 갈림길을 강요당하는 모양이 될겁니다. 그게 아니면 몇 년 장사하다가 건물주와 권리금 가지고 지리한 싸움 벌이다가 결국 식당 접어야 할 거고... 그걸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아니, 그래도 그 솔루션이 어디 가나, 거기 아니라도 다른 곳으로 옮겨서 장사하면 훨씬 더 나을 거고...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습니다. 가게 옮기는 게 무슨 사무직 이직 하듯이 오늘 짐 정리하고 일주일 쉬고 다른 사무실 책상 메이킹해서 일을 하는 식도 아니고...

사족으로, 위생문제는 이 주제에서 논외입니다. 위생문제는 백종원씨 말이 맞아요. 식당은 무조건 깨끗해야 하는 건 맞죠.

그냥 유튜브 영상 보다가 이래저래 복잡한 생각과 기억이 떠올라서 끄적여봤습니다.
식당 아들래미로서 직장 다니다가 식당이나 할까?라는 얘기를 들으면,
괜찮은 결정이다라는 생각과 동시에 그렇게 우습게 보이나?라는 생각이 모순적으로 동시에 듭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직접 시장 나가서 식재료 고르고, 식당 돌아와서 재료 손질하고 만들고,
자기 아침도 못 챙겨먹고 오전 손님 좀 받다가 점심 몰아치는 손님 정신없이 받고,
오후에 정리하고 설거지하고 저녁 손님 준비하고 저녁에 술하고 같이 드시는 손님 받아 장사하다가
10시에 마감하고, 다시 정리, 설거지, 매출 정산. 12시 귀가.
이게 제가 본 부모님 30년 인생이었습니다. 식당이 그렇게 대박도 아니었어요.
어딘지 지역이 잘 기억이 안나는데 청년몰? 거기 문제도 마찬가지로 생각이 들드라구요.
자기 몸을 갈아서 넣으면 아웃풋이 나오는 게 요식업입니다.
근데 어떨 때 보면 그걸 강요하는 모습이 종종 보여서, 저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어머니 친구 분들 중 연간 매출 수십억 나오는 식당 주인분들 계십니다.
30년 가까이 해외여행은 둘째치고 제주도도 못 가보신 분들이 많습니다.(그 자식들이야 니나노들이었지만...)
그런 선택을 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걸 알아주는 분위기도 있었으면 합니다.
(하지만 요식업의 현실은 대개 중간은 잘 없지요...)

동의를 받으려고 하는 글은 아니고 그냥 끄적여 본 소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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