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 사별 후 우울증 글을 보고…

2023. 6. 24. 08:49카테고리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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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때 울 어무니가 대놓고 도둑놈들 욕하다가 내 자식이 도둑놈일 줄을 몰랐다며 너스레를 떨었던...
나와 띠동갑 아내.
퇴근 후 실없는 농담따먹기를 하며 손 잡고 핫바 사먹으로 편의점을 가는 길이 행복하다던 아내.
물리치료사 일이 힘들면서도 재밌다며 미주알고주알 있었던 일들을 풀어 놓다가는 내 손을 잡아 자기 머리 위에 올리곤 쓰담아라!! 외치던 아내.

어느날 암 3기 판정에 오히려 놀란 나를 진정시키던 아내는 그렇게 암과 싸움을 이기지 못하고 4년 전 먼 길을 떠났다.

의사가 호스티스로 가시라는 말을 들은 얼마 후부터 뇌까지 침투한 암세포에 자신이 암말기라는 것 조차 기억을 못하고, 자기가 왜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 조차 못하고 있는지도 잊어 버릴 때쯤...
마지막까지 간병을 해주시던 이모님의 연락을 받고는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말도 없이 사무실을 뛰쳐나와 날아가듯 집으로 뛰어갔다. 거친 숨을 몰아쉬다가 두 손을 꼭잡고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나를 보곤 힘겨운 미소와 함께 가는 눈물을 흘리고는 조용히 숨을 멈추었다.
이모님 말로는 내가 올때까지 눈도 깜박이지 않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고 한다. 마치 눈을 감으면 다신 나를 못볼것이라 생각하듯이....
지금도 그 눈물과 미소는 생생하고,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떠나던 그 날까지도 나는 단 하루도 사랑한다 말하지 않은 날이 없었고,
말조차 하지못하던 마지막 일주일은 제외하면 나에게 단 하루도 나도 사랑해라고 답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나는 나도 사랑하다는 대답을 들을 수 없게 되었다.

남겨진 것은 암 치료 초기 집에 혼자 있기 심심하다며 데려온 작은 실키테리어 한 마리.
그리고 멈춰진 듯한 시간.
집안 곳곳에 새겨진 메아리치듯 울리는 그녀 와의 추억.
그리고 나 때문이라는 죄책감과 상실감.

첫 일년은 화장실 청소를 하고 부엌 청소를 하고 설겆이를 하고 빨래를 개어 놓고는, 대답없는  아내에게 칭찬해달라고 졸랐다. 하지만 언제나 싸웠던 기억, 후회하는 기억, 잘해주지 못한 부끄러운 기억 만이 떠올랐고, 퇴근하면 불꺼진 방을 보고 싶지 않아 모든 방의 등을 1년동아 끄지 않고 지냈다.
그리고 아파했고, 그리고 울었다.

그렇게 힘겹게 아파하다 첫 기일. 제사를 지내주고 집에 오니 갑자기 모든 게 무기력해졌다.
내가 왜 살지? 라는 의문과 함께...
수 년의 간병생활로 대부분의 사적인 연락이 끊겼고, 게다가 판데믹으로 남은 친구들조차 만나기도 부담스러웠다. 혼자임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고, 그로인해 애써 기억을 지우려 했고, 애써 추억을 가두려했고, 애써 그리움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더욱 죄책감을 커져갔고 우울증의 늪으로 가라앉아 갔지만, 옆에 앉아서는 내 손을 핥고 내 입술을 핥고 장남감을 물어오며 놀아달라고 보채는 강아지 덕분에 다행히 심각한 우울증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평생 책임져야할 이 녀석에게 지금도 감사히 지내고 있다.

그리고 어느새 시간이 흘러 3년 째가 되자 조금씩 추억의 두께는 엷어져 갔고, 그리움의 간격도 벌어졌다. 애써 그리움을 피하지 않게 되었고, 기억을 지우려 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어딘가를 갈 때 아내에게 다녀오겠다고 인사를 하고, 다녀오면 반기는 강아지를 안고 쓰다듬으며 아내에게 인사를 한다. 아픈 기억보다는 즐거운 추억을 먼저 떠올리며 다시 만날 언젠가를 담담히 기다리게 되었다. 그렇다고 우울증이 호전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조금 담담해 질 뿐...

작년 어머니가 급성질환으로 한 병원에서 눈을 감으셨다.
지난 번과는 다르게 어느정도 담담히 어머니를 배웅했다.
아내는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했지만, 한 번의 경험으로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일까...

어머니를 보낸 후 갑자기 우울증 증세가 좋아졌다.
왜일까 생각해보니, 어머니를 떠나 보낸 아버지와 감정적 공유가 생겼고, 경험을 통해 나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아버지의 말에 큰 위로를 받게 되었다. 오롯히 나만의 아픔이 아닌게 되었고, 우울증은 조금씩 호전되었다.

당연히 지금도 아내를 잊지 못하고 있고, 앞으로도 아내와의 추억을 버릴 생각도 없다.
그저 이제서야 다른 이별을 통해 헤어짐을 자각하고 덤덤히 살아갈 수 있게 되었을 뿐이다.

가족을 떠나 보낸 모든 이들에게
힘내란 말을 하고 싶지 않다.
잊으란 말도 하고 싶지 않다.

조용히 그 고통스러운 아픔에 동감하고 이해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주면 고마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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